정경영 칼럼

그리스 신화에서 디케는 정의와 질서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현대 국가의 대부분은 이 디케의 이상을 법 체계의 기초로 삼고 있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디케의 상징과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로 남아 있다.
 디케의 형상은 왼손에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저울이, 오른손에 예리하고 준엄하게 빛나는 검이 들려 있고 그녀의 눈은 눈가리개로 가려져 있는 모습이다. 왼손의 저울은 공정성, 오른손의 검은 정의를 실현하는 결단과 용기, 눈가리개는 중립성과 객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 사회의 법질서를 구현하는 최고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에 대한 신분보장을 철저하게 확립함으로써 디케의 이상과 상징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한다 는 대원칙은 사회 정의와 공정성의 확보라는 사법부의 기능을 보호하는 핵심적 내용이다. 

흔히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정의와 공정 그리고 인권을 사수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평가에 인색함이 없지만 매년 실시하는 헌법기관의 신뢰도 평가에서 우리 법원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 명망에 비해 아쉬움이 많다.
 이른바 사법 불신의 단초가 다름 아닌 법원 스스로가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과거 우리 법원은 암울했던 정치적 환경의 한복판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하고 있는 그 기능과 역할을 과연 어떻게 지켜왔는지 지난 과오에 대한 자성과 비판에 자유로웠는지 스스로 뒤돌아볼 일이다. 
최근 각 지방 변호사회를 중심으로 법관평가 결과 우수 법관을 실명으로 공개하여 그 모범을 진작하고 하위 평정 법관의 불합리한 행태들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강조하고자 그 사례를 널리 알리고 있다. 
2012년 법관평가제도가 도입될 당시 변호사의 사건 수임자로서 이해관계로 인한 법관 개개인의 호불호가 자칫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사법부 내부의 자체 평가에서 간과될 수 있는 보완적 기능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소송 참여자의 주장 경청, 사건의 쟁점 파악, 무죄 추정의 원칙 견지, 피고인의 인권 존중, 피해자의 세심한 배려 등 법관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이 아직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새롭지 않다. 
조정을 빈번하게 강요하고 고압적 태도나 부적절한 언행 그리고 공정성 결여, 방어권 행사 제한, 예단과 선입견으로 실체적 진실 침묵 심지어 가장 본질적인 사건의 쟁점조차 모르고 재판에 임하고 있다는 다소 의외의 결과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물론 많은 법관들이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업무량의 과다로 인한 부득이한 경우라고 변명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법관이 적용하는 법률은 엄중해야 하나 유능한 법관일수록 해당 법률이 품고 있는 취지나 목적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고, 법관의 양심은 의당 주관적 판단이 배제된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률적 양심을 뜻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관의 양심은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다만 그 양심의 영역이 공정과 정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 단호히 배척되어야 한다. 법관이 정파의 진영 논리에 휘둘려 소신과 신뢰를 포기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든지,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법관 스스로 고민을 멀리하고 진부한 논리의 잣대를 들이댄다든지,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문제 해결의 의지를 소홀히 한다든지,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나치게 경직된 법률 적용을 당연시 하는 것 등의 사례는 법관이 가져야 하는 양심의 영역이 그 깊이와 무게감이 얼마나 크고 중대한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법 불신은 법관이 판결의 준거인 법과 양심을 저버릴 때 증폭된다. 법조 카르텔은 우리 사회의 병폐이고 모순인 전관 비리의 대표적인 암 덩어리다. 이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지 않고서는 법관의 양심도 사법 정의도 지켜낼 수 없다. 

우리 전북 지역은 법조계는 물론 국가 전체가 우러러보는 법조 3성(星)의 고향이자 대한민국사법을 지켜낸 양심이 살아 숨 쉬는 명예로운 지역이다. 사법부의 기틀을 마련한 김병로, 법관은 찌든 현실을 꿰매는 역할이라며 모든 특권을 내려놓은 김홍섭, 돈벌이에 급급해서는 법을 올바로 따를 수 없다며 청렴이 곧 강직이라던 최대교는 사법 불신과 사법 정의를 오르내리며 갈팡질팡하는 작금의 우리 사법부에 대한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법이 인간을 지배하는 법 만능주의로 치닫는 오늘날 인간이 법 위에 있음을 실현하는 그 중심에 공정과 정의 그리고 진리와 자유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켜내는 사법부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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