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

노자의 정치론은 간단하다. 가장 바람직한 정치는 국민들이 통치자가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법과 제도를 순리대로 적용하며 실천함으로써 상호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이른바 무치(無治)를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차선의 정치는 통치자가 유교적 이상인 덕과 인의를 베풀어 국민들이 친밀감을 느끼고 칭송을 자아내게 하는 덕치(德治)이고, 차악의 정치는 법과 제도는 물론 주어진 권력의 힘으로 국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함으로써 두려움을 주는 외치(畏治)이고, 최악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해 경멸과 비웃음, 증오의 대상이 되는 모치(侮治)로 분류하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 많은 지도자들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나름의 통치 이념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내세웠지만 어느 누구도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그들 스스로도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 
정치가 과거를 거울삼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쌓아가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기능을 보여줘야 함에도 지극히 퇴행적인 오늘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불과 100여 일을 앞두고 있다. 근대 사회의 민주정치는 대의제이고 정당은 대의 정치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로써 바람직한 민주정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중추적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당은 산발적이고 지엽적인 다중의 정치적 의사를 규합하여 정제된 여론을 형성하고 선거라는 제도를 통하여 대중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선거라는 절차는 정당이 의회를 지배할 수 있는 최상의 제도이고 선거를 통해 정당이 의회는 물론 정부까지도 장악할 수 있음을 볼 때 선거와 정당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치열하고 적나라한 정치행위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거대 정당인 여야의 무책임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은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건지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건지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엽기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법대로 하면 벌써 선거 일년 전에 마무리를 했어야 할 선거구 및 선거제도 확정은 갈 길이 어딘지도 모른 채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책임정치의 모범을 보여줘야 함에도 동네 친목계보다 못한 정치력으로 자중지란에 허덕이고 있다. 거대 야당은 이런 여당을 이길 자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거부권으로 의회 권력을 희화화하는 정부가 두려운 건지 꼼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품격도 없고 자존감도 사라진 작금의 집권 여당에 대해선 더 이상 비판의 대상이 아니기에 말을 아끼고 싶다. 대신 의회 권력을 손에 쥐고서도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짓눌려 전전긍긍 국민의 눈높이를 외면하고 있는 거대 야당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애정을 쓸어 모아 고언을 붙힌다. 야당 내부의 계파간 갈등이나 지도부에 대한 불신 및 탄핵은 그들의 문제이니 설득을 하든 이견을 수용하든 알아서 할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는 비례대표제에 대하여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비례대표 선거제도는 정치 선진국에 비하여 역사도 짧고 운영 시스템도 다르다. 다수대표제인 지역구 의석수와 관계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종전의 병립형은 승자 독식의 폐해로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키우는 온실이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이 없는 군소 정당도 비례대표 득표율에 따라 일정 부분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받는 이른바 (준)연동형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여야 공히 위성 정당이라는 전무후무한 사생아를 잉태하여 3류 정치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사실이 있다. 
현 야당 대표는 지난 대선 후보 때나 당 대표 선출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정착시켜 선거에서의 사표 방지 및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 기회를 보장하여 의회 정치의 다양성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최근 행보는 멋지게 지는 것보다 지저분하게 이기는 쪽으로 명분을 찾은 듯 보인다. 
180석의 국민 지지가 무거웠던지 살찐 돼지처럼 갈팡질팡 권력도 빼앗기고 입법 개혁도 실종시키고 이제 와서 대 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겠다는 심보는 노자의 표현대로 온갖 조롱과 멸시와 업신여김으로 남을 것이다. 
담대하게 큰 물의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집권 여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든지 말든지 당초의 약속대로 연동형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비례대표 의석을 노리는 꼼수를 두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지역구에서의 압승을 위해 정치 신인을 대거 발굴하고 내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길 바란다. 
정치는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원칙없는 승리보다 원칙있는 패배를 선택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바보처럼 헤쳐 나가던 어느 지도자의 울림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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