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고-                                           

      하 철 (전 정읍시 행정동우회장)
     하 철 (전 정읍시 행정동우회장)

늦가을 비가 내려 내장산 고운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던 날에 지금도 대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중학교 동창 친구한테서 책을 선물 받았다.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김홍신 작가가 이번에 새로 출판한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다. 주인공 ’한서진‘은 전방 철책 근무 소대장으로서 우리 쪽 철책을 침투하다 사살된 북한군인에게 기도하고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꽂아줬다는 행위로 보안부대에서 심문당하면서부터 발생하는 일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책의 부제로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지요‘라고 쓰여 있는 만큼 가치 있는 인간의 삶으로 복수와 용서의 궁극적 의미를 소설은 표현하고 있다. 용서를 뜻하는 영어 ’forgive’는 포기하다 ‘give up’의 ‘give’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포기’라는 뜻을 포함한 영어의 용서는 용서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데, 용서하기 위해서는 분노나 복수 또는 보상받으려는 감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용서받는다는 것은 가해자의 맘속에 담겨있는 과거의 응어리를 덜어내는 것, 과거의 잘못으로 인한 오점을 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흔히 용서란 주로 종교적 차원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용서의 문제는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관계되고 있다. 종교, 문학,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출판된 책과 연구논문은 물론 용서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나 기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는 용서의 문제가 우리 삶에서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용서의 문제가 다루어진다는 사실은 용서의 문제가 그리 녹록지 않고 상당히 복합적인 주제라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만약 용서할 만한 것만 용서하겠다고 한다면, 용서는 바로 그 개념 자체는 사라지게 된다.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진정한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원수까지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무한한 용서의 메시지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인 ‘팀 켈러’가 쓴 ‘용서를 배우다’ 책에서는 용서의 근원에 대해 용서는 기독교의 핵심 주제이며 성경 전체에 배여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 용서가 처음 명시된 것은 창세기 50장 17절의 요셉이야기로,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은 그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팀 켈러’는 용서한다는 것은 잘못의 댓가가 가해자 쪽에서 당신에게로 넘어오고, 그 댓가를 당신이 감당해야 하기에 용서는 일종의 자발적 고생이다라고 말한다. 즉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은 댓가를 자신이 치르겠다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딕 티비츠’가 쓴 ‘용서가 있는 삶’이란 책에서는 ‘살아가기 위해서 용서하라 (Forgive to Live)’ 고 강조하고 있다. 실패하기 위해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평온하게 죽기 위해 용서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살아가기 위해 용서해야 하고, 용서는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도 아니다는 것이다. 용서는 언제나 과거의 사건을 향하고, 그 과거를 뛰어넘고 현재와 미래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용서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다’라고 말을 하지만, ‘딕 티비츠‘박사는 ‘실수는 인간의 몫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용서 또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국제용서연구소(International Forgiveness Institute) 에서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더 용서를 잘하는가 초점에 맞추어 오랫동안 연구하여 왔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신경질적이며 노여움이 있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다른 사람들보다도 용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용서를 하는 사람들이 분노가 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용서하는 사람들이 질병에도 적게 고통을 겪는다고 발표하였다. 본래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누구나 선한 품성과 악한 품성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러기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악한 품성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같이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즉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이기에 결국 인간이란 누구나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에 대하여 씨름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현명한 자는 용서하나 잊지는 않는다’고 용서를 명료하게 정리한 미국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즈’의 글로 매듭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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