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크고 작은 외침이 수없이 많았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은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최대의 비극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초토화되었고 100여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여 그야말로 한반도 전체가 침탈되고 유린당한 전무후무한 전쟁의 역사이다.
 7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백성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당시 왕실을 비롯한 지도층은 이러한 백성들의 원한을 등진 채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을 지키는 데 급급하였고 국가의 존망마저 내팽개치고 오로지 각자의 생명을 부지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그렇잖아도 엄격한 유교 사상에 찌든 신분사회에서 양반과 민초들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계급화된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 맞물려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유부단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선조는 터무니없는 통치력으로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며 고군분투하던 이순신을 백의종군케 하였고 원균의 칠천량 참패를 자초하였다. 
패잔병과 다름없는 수백의 군사와 초라하게 일그러진 열두 척의 전선을 수습하여 명량해전을 준비하면서 이순신이 선조에게 보낸 비장한 장계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막아 싸운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사옵니다.
 파직과 고문, 백의종군으로 군인의 명예를 짓밟은 지존의 왕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킨 이순신의 마지막 출사표는 동서고금 어느 해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가능한 군인정신의 표상이다. 이순신의 신념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닌 풍전등화 같은 구국의 충정이고 금수처럼 찢어진 민초들의 한을 씻기 위한 울분이라는 사실은 난중일기를 통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430여 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순신의 피를 토하는 이 절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될 우리 역사의 뿌리를 지탱하는 성역과도 같은 가치이다. 
그렇게 지켜 온 우리의 자유와 평화는 이제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 유수의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세계적인 정치 선진국들이 수백 수천년에 걸쳐 쌓아온 민주주의는 불과 80년의 짧은 시간을 거치는 동안 굳건하게 그 토대를 구축하였고, 가난과 빈곤의 굴레를 이겨낸 경제 성장은 그 속도는 물론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세계 경제 대국들과 대등한 경쟁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이 뚜렷하다. 
그러나 너무 빨리 달려 온 탓일까.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사회 흐름은 우리가 만족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그간의 성장과 발전이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퇴행적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힘들여 이뤄놓은 노력의 산물들이 혹 변질된 모습으로 묻힐까 봐 무거운 마음을 접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데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선도해야 할 정치는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정부와 집권 여당의 지리멸렬한 후진적 파행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온갖 개혁의 당위마저 외면한 채 표류하고 있다. 
거대 야당 또한 당 안팎의 변화와 쇄신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귀와 입을 닫은 채 판세의 유불리만 계산하고 있다. 집권당은 끝없이 추락하는 민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비정상적인 꼼수로 국민들의 눈을 속이고 있다. 
야당은 의회 권력을 손에 쥐고서도 개혁 입법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요지부동 안이함에 도취되어 있다. 그들의 실책이 뭔지 신랄한 민심을 잘 읽어내고 틀어진 방향을 바로 잡아 이반된 민심을 끌어오면 될 일을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오로지 입만 벌리고 있는 꼴이다. 
그런들 잘 익은 감이 그들의 입 안에 들어 올 리 만무하다. 새삼 놀라운 일은 정치권이 다가올 선거를 대비해 새로운 리더의 필요성을 요구하면서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으니 충분히 이기는 선거를 치룰 수 있다고 감히 이순신을 소환한 일이다. 견강부회도 유분수지 이순신의 배 열두 척이 가당키나 한 건지 정당으로써 최소한의 양심조차 저버린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로지 백척간두에 놓인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즉생의 이순신과 단지 선거 국면에서 참패를 모면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는 자들의 교만함을 어찌 비교나 할 수 있는 건지 참으로 어리석다. 모름지기 말의 무게는 침묵의 가치와 같다. 
아무리 무책임하고 깃털처럼 가벼운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사사로운 이익과 영욕을 탐하기 위해 그 말의 가치와 신의를 저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든 국가든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부족하고 마땅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면서 엉뚱하게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행태를 경계할 뿐이다. 정부와 집권당이 당초 약속했던 개혁과제들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실종된 야당과의 협의와 타협의 정치적 기술을 복원한다면 등 돌린 민심은 언제든지 제자리에 돌아오기 마련이다. 
목전의 선거를 노린 미봉책이 아닌 오직 국가와 국민이 전부라는 것이 확인되면 이순신의 배 열두 척으로도 가능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저작권자 © 정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