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 본보 이사겸 논설위원
정경영 칼럼/ 본보 이사겸 논설위원

수년 전 필자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초등학교의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성대히 치룬 적이 있다. 학교 정문 옆에 기념비를 세우고 수백명 동문들이 모여 잊혀져 가는 추억을 되새기며 쉼 없이 달려 온 지난 시간을 자축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때 그 시절을 아쉬워하는 표정들을 그래도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가 쓸쓸한 재회를 맞이한다. 학급당 70명이 넘는 콩나물 교실, 무섭기만 한 선생님들, 흙먼지 풀풀대는 좁은 운동장, 낡은 풍금의 지정곡 고향의 봄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짙은 향수이자 역사이다. 50여 년이 지난 오늘 초저출산으로 인한 지역 소멸의 직격탄은 이런 초등학교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이 없는 교실은 이제 선생님만 덩그런히 남아있다.

올해 전북특별자치도의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32곳이고 딱 한 명인 학교는 37곳이라는 현실은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울하고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 이유를 분석하고 대책을 검토한들 불을 보듯 뻔할 텐데 자꾸만 사돈 남 말하듯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지역마다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가 애처롭다. 그런 몸부림으로 과연 소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 지역마다 재정 여건에 따른 차별화된 출산 지원금을 제시하지만 흡사 제로섬 게임처럼 그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중앙 정부의 대책 또한 근본 원인을 멀리한 채 주변만을 맴도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인구감소지역 대응 범정부 종합계획 3대 전략으로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산업 진흥, 매력적인 정주 여건 조성 지원, 생활 인구 유입·활성화 도모를 내세우지만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그럴듯한 수사일 뿐이다. 내심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도권 메가시티 운운하는 정치권력의 파렴치함은 정책의 이율배반을 넘어 국민을 기만하는 술수이다. 수도권 집중화가 지방 소멸의 동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음에도 기득권 세력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기업, 학교, 병원, 공공기관의 대대적인 지방 분산이 선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책도 기대할 수 없다. 초저출산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해결책도 모두 여기에 닿아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 치솟는 집값, 과열 경쟁의 입시제도, 불균형한 의료서비스 등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고 있는 이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개혁을 위한 진통과 갈등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한다. 그저 정쟁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갈 수는 없다. 지방 소멸은 수도권의 위기를 초래하여 결국 국가 소멸이라는 도미노를 피할 수 없다.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운동장, 교문 밖 문방구 자리에 들어선 편의점과 부동산 중개업소, 학생 수보다 많아진 선생님과 교직 종사자 등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 사뭇 안타깝지만 그저 손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학교 통폐합을 과감하게 시도하여 교육 재정의 효율성을 기하고 아이들에 대한 학습의 질을 보장하는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문을 닫는 학교는 폐허처럼 방치하지 말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실생활과 밀접한 자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에게 다가온 이 암울한 현실을 이제 피할 수는 없다. 우리의 정치·경제적인 규모와 실질적 위상이 세계적 수준으로 높아진 만큼 국가적 현안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모든 국정 어젠다의 중심에 초저출산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과 이에 맞물려 있는 지방 소멸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가 최우선의 논제이어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비록 잠깐 우리의 인식과 제도와 현실의 벽이 두꺼워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백척간두의 무거움을 자초하였지만 이제 이 난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 미래와 희망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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